[아침을 열며] 계단에 올라서서[영남일보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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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경 호산대 총장
































죽을때까지 여러 단계 거쳐 노년기는 성숙한 나이 바탕
성숙한 지혜를 갖고 있어야 삶과 죽음 간격 줄일수 있어
장자의 문장처럼 살아가야


초등학교 1학년인 친구의 손녀는 우리 모임에서 유명한 아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린 그 아이가 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바탕 웃으며 즐거워한다. 요즘은 “할머니는 언제 죽어?”라고 자꾸 물어 할머니를 곤란하게 한다는데, 깜찍한 인형 옷도 만들어주고 버스 타고 수영장도 함께 가는 할머니라 무척 걱정되나보다.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마지막 작품은 ‘일 트리티코’다. 말년의 그는 짧은 오페라 세 편을 완성한 후 이들은 반드시 함께 공연하도록 지시했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 ‘외투’ ‘수녀 안젤리카’의 주인공들은 아주 판이한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상속 욕심에 눈이 어두워 허둥대는 친지들과 이를 틈타 모든 재산을 가로채는 잔니 스키키는 재미있는 희극으로 그 이름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빌려왔다. 최고의 소프라노 아리아인 ‘오, 사랑하는 아버지’를 들을 수 있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외투’는 치정과 복수를 다루지만 그 아래에는 죽은 아이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슬픔이 흐르고 있다. ‘수녀 안젤리카’도 엄마와 아기의 이야기다. 엄마에게 아기란 얼마만 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무거운 작품이다. 하느님을 거역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아이와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더없이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세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천재 작곡가 푸치니가 ‘살아보니 인생이 이렇더군’ 하면서 가볍게 툭 던져주는 참 인간적인 유언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나. 그렇다면 지금 나의 위치는? 친구 손녀 말마따나 마지막 계단에 다다른 것 같다. 그 말이 귀여울 만큼의 마지막 지점, 인식과 판단의 정점 말이다. 에릭 에릭슨은 사람의 인격은 평생에 걸쳐서 성장하고 발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면서, 단계마다에는 그 시기 특유의 발달과제가 있다고 했다. 노력하여 과제를 잘 해결할지 잘 못할지, 각각의 갈림길은 생의 위기가 된다. 성공적으로 해결할 땐 그 열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심리적 힘이 되어준다. 태어나서부터 청소년기까지의 과제는 신뢰, 자율, 주도성, 근면, 정체감 형성이다. 그 후 성인 초기에는 사랑과 친밀감, 성인 중기에는 배려와 생성, 성숙한 나이에는 지혜와 자아통합이라는 노력과 열매로 삶은 마감된다. 에릭슨은 노년기를 성숙한 나이라고 불렀다.

노년기가 진정 성숙한 나이이며 성숙한 지혜라는 결실을 거두려면 마지막 계단에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나는 요즈음 ‘장자’에 푹 빠져 있다. 앞서 과제들은 비록 불충실하게 지나버렸지만, 사생관만은 장자의 지혜에서 차용하고 싶다. 그래서 사뿐 가볍게 옮겨 타고 싶다. 장자는 변화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변하라 했다. 장자에게는 생사도 만물의 변화 과정이다. 비워야 변할 수 있고, ‘나’를 없애야 비울 수 있다. 상대와 나의 경계 지음을 희미하게 만들어 간다. 귀와 눈은 안을 살피는 데 쓰고, 분별하는 마음의 지각은 밖으로 내보낸다. 장자의 사생관은 ‘올 때가 되어 오고, 때가 되어 떠나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을 한 가지로 여기려면 삶과 죽음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두 개의 높낮이를 크게 차이 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삶을 좋아할 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 몰라,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는 것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장자의 문장에 매료되고 그의 사상에 심취하지만, 사사로운 욕망 때문에 어려울 건 뻔한 노릇이다. 그러나 꾸준히 지향한다면 조금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 본다.

어느 독일 시인의 이런 시가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그 위로 벌써 꽃이 자라고,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그녀는 너무 가벼워 땅은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가벼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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