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본능과 의지 사이에서[영남일보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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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경 (호산대 총장)

































자식 키우는 여성 입장에선 남편과 자식 대하는게 달라
‘우애적 사랑’ 부부와 달리 자식에겐 본능이 먼저 작용
꿈에서도 자식은 포기 안해


대학 동기들과 졸업 40주년 여행을 갔다. 5년 전 모임과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육십대 중반이 되니 매년 하나씩 어색한 무언가가 자꾸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가요 부르며 노는 게 초라해 보인다는 느낌을 공유한 분위기였다. 쉼보르스카의 시가 생각났다.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가고 있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게 즐거웠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어린 연예인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도 한둘 있었지만, 대개는 머리 염색부터 운동, 연금, 실버타운, 그런 것들이었는데, 여하튼 계속 웃으면서 재미있어 했다. 그중 1위는 ‘남편과 자식이 어떻게 다른가’였던 것 같다. 젊어서부터 주부로 지낸 친구가 지금도 부엌일이 제일 싫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밤 12시에 들어와도 벌떡 일어나 저녁 먹었니? 뭐 해줄까? 하게 되는데, 남편에겐 걸핏하면 먹고 들어 와” 한다고 했다. 그 말은 수 십 년간 멀티플레이어와 멀티태스킹으로 골병든 우리 모두를 안심시키는 말이었다. 두 아들에게 음식 만드는 걸 가르쳤더니, 며느리들 불평이 없고 잘 살더라는 말에 “맞아” “맞아”가 이어졌다.

남편과 자식은 어떻게 다른가. 자식에게는 즉각적 감정인 ‘본능’이 작용한다. 아무리 지치고 피곤할 때도 본능이란 것은 펄펄하다. 본능적 힘으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근원, 그 근원은 무얼까? 그게 바로 ‘생명’이라는, 생명력이란 무서운 힘이다. 생명력은 생명이 붙어있는 한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가 말했듯이 결혼 생활에 있어서 낭만적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애적 사랑이 부부를 함께 있게 만들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역할을 한다. 우애적 사랑에는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작용해야만 한다. 즉각적인 감정과 달리 이성에 속하는 의지는 작용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우애적 사랑은 동일시로 인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 남편 얼굴이나 아내 얼굴이 보기 싫을 땐 바로 자기 자신이 미워질 때라는 통설은 부부 간의 동일시를 설명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황혼 이혼이 늘기도 하겠지만.

나는 영화 ‘디 아더스’와 ‘소피의 선택’을 잊지 못한다. 그 후 디 아더스에 나온 니콜 키드먼과 소피의 선택의 메릴 스트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되었다. 디 아더스는 여러 번 보았다. 그 영화는 짧은 시간 잠깐을 제외하고는 모든 배역이 혼령들이다. 서양에서는 혼령이 햇빛을 보면 안 된다는 미신이 있나보다. 남편은 전쟁터에 가고, 커다란 저택에서 엄마는 아이들과 늘 무거운 커튼을 내리고 지낸다. 엄마와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다가 아이들이 그만 사고로 죽게 되고 엄마는 권총으로 생을 접었는데, 엄마의 혼령이 어떻게 그 집을 떠날 수가 있겠는가. 혼령이 되어서라도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소피의 선택도 참 잔인한 영화이다. 엄마가 자식과 함께 극한 상황을 맞게 되는 스토리는 가장 잔인한 법이다. 아우슈비츠가 배경인 이 영화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소설에는 소피가 약한 아이를 살리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독일 장교에게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장면이 길게 그려져 있다. 더 이상 가혹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하게.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사회적 관계라는 말이 있다. ‘훌륭하게 큰다면 자랑스러운’이라는 조건이 붙는. 여자들의 경우, 아이에 대한 애착만 끊을 수 있다면 이 세상 전체가 다 보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아 키워봤으니까. 그러나 꿈에서도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 소아과 의사 시절, 어느 엄마가 말했다. “아이를 낳은 이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은 잠이 아닌 다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는 두 눈을 가리고 자유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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