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독서에 대한 단상 [영남일보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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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경 호산대 총장
사유를 넓고 깊게 하는데
책읽기 만한 것이 있을까
인공지능 이후의 세계는
남는 것이 시간이라는데
독서 취미가 도움 될 듯


나는 반짝거리면서 달고 쫀득한 도넛을 자주 먹다가 3㎏을 찌운 적이 있다. 초콜릿이, 아이스크림이, 바삭거리는 스낵이, 매운 떡볶이가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은 습관이 될 정도로 자주 먹질 않는다. 탄수화물과 당분, 매운 음식은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해 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때 이후 음식을 고를 땐 ‘아이 음식’과 ‘어른 음식’으로 구분한다.

윌리엄 글라서는 좋은 선택의 조건 여섯 가지를 이렇게 밝혔다. ①기분이 좋고 ②유용하고 ③자신의 욕구충족이 되며 ④타인의 욕구충족을 방해하지 않으며 ⑤파괴적이지 않고 ⑥발전지향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긍정적 중독’과 ‘부정적 중독’이란 말로 유명해진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부정적 중독은 생물학적인 본능을 만족시키거나 즉각적인 감정의 뇌를 건드려 기분 좋게 느끼기를 바라는 인간의 취약성과 약점이 원인을 제공한다. 연애, 마약, 술, 도박, 권력과 돈, 돈과 지배욕, 독선, 이것은 본능의 문제로 부정적 중독을 일으킨다. 그 반면 달리기, 요가, 명상, 정원 가꾸기, 악기 다루는 것, 책 읽기 등은 긍정적 중독을 일으킨다.

서점은 조용하니까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잘 들린다. 초등학교 여자 아이가 “난 우유 끊고 신문 보기로 했어”,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운동하는 애가 책 너무 보면 안돼”라는 말이 기억난다. 요즈음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아이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의 책을 읽기를 바랄까? 혹시 학교 공부를 잘 하게 만드는 단계까지는 아닐까? 일반적인 책 읽기는 세 단계다. 1단계는 정보를 얻기 위해, 2단계는 지식을 갖기 위해, 3단계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나는 사적으로 취미를 위해,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인생사의 통합적 사고에 도움이 되도록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40대에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책을 보는지, 신문을 보는지. TV를 보면 된다고 했다. 50대 후반에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눈이 아파 못 본다고 했다. 15세, 19세에 상위 5%에 든 소녀들이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책을 안 봐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더 잘 산다는 것, 그리고 책은 한 번 끊으면 못 보게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책 중독이 되지 않고서는 50~60대에 책을 읽지 않는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한강의 소설을 보면 그의 정신연령은 60대의 완숙기로 보인다. 그의 작품을 젊은이들이 불륜으로, 혹은 미학적 관점으로만 볼까 우려된다. 그의 책은 사유를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폭과 넓이, 사유의 깊이에 충격을 받았다. 40대에 데미안을 읽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춘기를 다루는 내용과 문장이 정작 사춘기에는 와 닿지 않는다. 그 세월이 한참 지난 후라야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것만이 나이의 이점이 아닐까? 다른 건 나이 들어 좋을 게 없는 것 같다.

비싼 경비를 들여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작품들을 직접 보는 걸 행복해 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림이나 조각보다 ‘훌륭한 글’이, ‘위대한 책’이 더 뛰어나고 더 업그레이드 된 예술일지도 모른다. 책은 비용도 싸며, 지역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서울 사람이라고 더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지 않으니까.

60대에 번역이 잘 된 세계문학들을 읽어보라. 천재들의 작품을 읽지 않고 죽기에는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인공지능 이후의 세상은 남는 게 시간이라는데, 우리의 아이들은 그 많은 날들을 무엇으로 보낼 건가? 책 읽기에서 중용을 선택할까? 긍정적 중독을 선택할까? 나도 모른다. 각자가 사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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