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이제는 천천히 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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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으면…." "아니야, 난 지금이 좋아." 나이 든 우리는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눕니다. 일초도 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땐 내 마음도 아련해지고 아파옵니다.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습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직업세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20대에는 이삼일에 한 번씩 당직까지 했지요. 내 아이는 집에 두고 다른 아이들과 밤을 새웁니다. 마흔 시간 만에 집에 돌아가면 시체같이 잠을 자죠. 과제가 있는 날은 또 잘 수가 없습니다.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모양이 되어요. 집을 나서면서 내 아이는 잊어야했습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이사를 해도 연락해볼 수가 없었어요.

계속 일은 많았습니다. 여자가 할 일은 왜 그렇게 많은가요? 출근길에 거울을 꺼내보면 화장이 얼룩덜룩해요. 세월이 지나고 보니 사소한 일들이 '운명'을 결정지은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일본소설가가 수필에서 "소아과의사가 되었으면…" 했지요.

그 때로선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잘못한 게 참 많습니다. 엄마가 곁에 있었던 아이들은 더 잘 큰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러다가 "뭐 결과만이 중요할까? 주고받은 마음이 더 중요할 수도 있어.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양이 더 소중할지도 몰라" 라고 위로합니다. 아이가 설사를 하면 나도 같이 굶었죠. 운동회 날은 뛰어갔더니 우동을 사 먹었더군요. 많고 많은 날 허전했을 아이. 후회되지 않는 삶이 있겠습니까만, 시간에 쫓기면서 가슴 조이던 그 시절,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다 바쁩니다. 아들딸이 말 한마디 않는다고 엄마들은 불평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죽어라고 공부하거나 잔뜩 멋을 부리면서 또래들과 어울리지요.

모든 게 경쟁이어서 사는 게 전쟁 같습니다. 유치원 전부터 교육전쟁으로 뛰어듭니다. 어른이 되면 또 시작하지요. 경쟁을 즐기는 아이들은 힘을 얻지만, 더딘 아이들은 기운을 잃습니다. 배움에 대한 기쁨과 호기심은
볼 수가 없어요. 주위환경은 변화해야만 살 수 있다고 우리를 몰아세웠습니다. 가전제품과 IT, 자동차는 신제품을 내어놓고 바꾸지 않으면 '구식'이 된다고 세뇌합니다. 인터넷은 바쁜 우리의 속도감을 더욱 부채질하지요. 몸에 밴 경쟁의식 때문에 승자의 모습에서도 초조함이 비칩니다.

친구는 일본 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1년쯤 보고나니 자신의 행동이 달라졌다고 했어요.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 합시다'. 나도 TV를 켜봤더니, 고요함과 공손함에 마음이 끌립니다. 우리는 열정이 많은 국민이란 말을 듣지요. 중국의 고서에는 아주 온순한 민족이라 했는데, 어느 것이 진정한 우리의 정체성일까요?

우리의 '뇌'는 디지털방식이 아니고, 아날로그랍니다. 우리는 뇌에 새겨진 모양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요. 경험과 기억도 아날로그방식으로 저장되고, 감정도 아날로그로 튀어 나옵니다. 아날로그인 우리의 뇌는 어마어마하답니다. 세상의 어떤 디지털 기계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뇌는 구석기 시대에서 진화를 멈추었어요. 더 이상 좋아질 수가 없어서겠지요. 인류는 살아있는 뇌로 엄청난 문화유산과 과학문명을 축적했습니다.

사람들은 합성섬유의 실용성과 편리함에 감탄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 몸에는 역시 자연섬유가 편안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Happiness의 번역은 '행복'이 아니라, '안락(安樂)'이 맞다고 일본의 지성들은 주장합니다. '안락'은 편안함을 뜻하지요. 그것은 집착을 버리는 데서 온다고 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경제가 위축되어도 평화롭다고 하네요.

좋은 일하면서,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나요?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을 아끼고, 정든 것에 내 생명을 불어넣으면 어떨까요? 요즘은 생명(生命)이 있는 것만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애틋한 정(情), 선(善)한 마음, 넉넉함, 그런 것이 그립습니다.


박소경 경산 1대학(경동정보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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