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가만난사람] 의사이고 대학총장이지만, '나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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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경 (경산1대학 총장, 소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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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안타까웠다. 스무 살 아이들이 인생사가 복잡한 경우도 많았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없거나 가난하거나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는 듯 보였다.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2년. 마음이 급해졌다. 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학문 아닌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9년 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에게 보내는 ‘레터’를 쓰는 경산1대학 박소경 총장은 얼마 전부터는 직접 쓴 <심리학강의>와 <인체의 이해>를 교재로 학생들에게 강의도 한다. 외국에서는 몸(해부생리학)과 마음(심리학)에 대한 내용을 일반교양처럼 가르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고.


‘레터’도 일정량이 모이면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책으로 묶어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학생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소아과 의사로 대구 소재 전문대학인 경산1대학을 이끌고 있는 박소경 총장을 만나 학생들과 함께 사는 얘기를 들었다. 


몸을 알고 마음을 알면?


경산1대학 캠퍼스에는 어디든 뇌 동상이 있다. 말 그대로 인간의 뇌형상을 조각한 것이다. 박 총장은 강연할 때도 뇌 모형을 가지고 들어간다. 청중들에게 뇌를 직접 보여주면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하는’ 동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의대생들은 그냥 지식만 알려주면 알아서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일반 대학, 특히 우리 학교에 와보니까 학생들이 ‘가능하면 안 하면 좋은 게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어려운 거, 재미없는 거, 자격증이나 돈 등 무언가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박 총장은 대부분 서민 계층인 학생들이 세상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힘을 기르기 위해 철학, 심리학 같은 인문학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전에 자기 몸을 제대로 알아서 건강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필요했다. 그래서 그가 준비한 것이 쉽게 쓴 인문서다. <인체의 이해(Human Body)>는 임상과 기초의학을 접목한 입문용 안내서이고, <심리학 강의(Psychology)>는 용어와 주요 학자들의 이론을 쉽게 소개해 심리학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20살 이후 10년,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의사만 했으면 지금 제 동기들처럼 여유 있게 삶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렇게 전문대학에 왔잖아요. 제가 서른한 살 때 계명의대 전임의로 있을 때는 학생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지는 못했어요. 워낙 공부할 게 많고 목표가 분명한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학생들을 보면서 부모 비슷한 심정이 되더라고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해, 그리고 희망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1996년부터 대학 간호과를 만들고 간호학, 병원의료행정,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 미생물학까지, 담당 교수가 없고 의사가 가르칠 만한 과목은 다 맡아서 가르쳤다. 한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운 것을 ‘리뷰’했다.
“나도 화장실 안 갈 테니 너희들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옷도 편한 걸로 입고 가서 같이 햄버거 시켜먹으며 공부 시켰죠, 하하.”
이렇게 빡빡하게 공부시키는 ‘의사스러운’ 선생이지만, 그는 사실 미학과를 가겠다며 고등학교 2년간을 미술학원에 다닌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의대를 가긴 했지만 대부분 경북의대를 지망한 고등학교 동창생들과는 달리 서울에 있는 이화의대를 지원했다. ‘서울’과 ‘여대’에 대한 동경 때문에 지원했지만 의대 시절은 혹독했다. 경쟁도 치열했고 그 경쟁은 수련시절까지 이어졌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어떻게 살았는지가 인생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 같아요. 그 때 워낙 빡빡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서인지 개원하고 나서 첫 해는 363일을 일했다니까요. 설, 추석 이틀 놀았죠. 쉰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몰라요, 하하.”


나도 번듯한 보험증 갖고 싶다


그러던 중 경산1대학 재단 이사장인 시아버지가 그에게 학교에 와서 간호과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진료실과 집, 시장을 오가던 그에게 전문대학에서 간호과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과제였다.


“당시에는 의료보험카드가 종별로 디자인이 달랐어요. 가끔 의료보험에 문제가 생겨서 진료비를 못 받기도 했거든요. 진료비 떼일 염려 없는 큰 회사직원, 교직원, 공무원들의 의료보험증은 번듯해 보이더라고요. 농담을 좀 하자면, 교직원에게 나오는 번듯해 보이는 의료보험증을 갖고 싶었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밀려드는 환자를 보면서 고달프게 살고 있는데 내 보험카드는 허름한 동네보험증이었거든요. 선생 되면 보험증은 번듯한 걸로 나오겠구나, 싶었어요, 하하.”


‘있어 보이는 의료보험증’을 갖고 싶어서 시아버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며 농담하지만 사실 박 총장은 학생들에게 보내는 레터에서 서른 살에 세웠던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스물다섯 살까지는 공부하고 쉰 살까지는 의사로 일하고 쉰 살 이후로는 ‘보너스’ 즉,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11년간 의대공부, 의사 수련에 전임의 생활 4년, 개원의 생활 11년까지 의학과 환자, 그리고 가족이 세상 전부인 듯 살아온 그는 하루 300명까지 진료하던 소아과 의원을 닫고 1996년 간호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간호과를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이라 가르칠 내용도 많았지만 학생들의 생활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는 학생들을 전문인으로는 물론이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대학에 온 지 13년 만에 총장이 됐는데, 취임 6개월 만에 느낀 것은 총장은 수완 뛰어난 사업가, 아니면 진짜 선생, 둘 중 하나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진짜 선생은 공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가르치고,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1등을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공부, 100살까지 살 텐데 다른 직업에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공부를 도와주고 싶었죠. 그래서 몸, 마음,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몸, 마음에 대한 책은 냈으니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한 책을 써야 하는데, 그는 역사책이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세상, 이 시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려면 지난 역사에 견주어 보는 수밖에 없다. 곧 역사책도 나올 예정이다. 물론 쉽게, 이 책을 바탕으로 역사를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해주는 것이 목표다.


공부, 하려면 제대로!!


그는 철학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데는 도사인 의사 동료들에게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은, 공부하되 제대로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가 설득해서 대학에서 심리학이나 사회복지학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동료들도 꽤 된다. 취미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배워보면 “예전에 나는 안 그랬는데…”라는 기성세대 같은 말은 하지 않게 된단다.

공부는 여전히 어렵고, 세상도 만만찮다. 박 총장에게 공부는 이제 자격증을 위한 것도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다.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듯 대뇌를 마음껏 이용하려는 본능이다. 다만 그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약간의 괴로움도 감수하면 달콤한 학문의 즐거움과 함께 더 깊고 큰 세상을  즐길 수 있다.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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